1. 모잠비크의 위치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한 나라로, 인도양과 접해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탄자니아, 서쪽으로는 말라위와 잠비아, 남서쪽으로는 짐바브웨, 남쪽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에스와티니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긴 해안선을 따라 인도양이 펼쳐져 있어 해양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수도는 마푸토이며, 열대 기후를 띠는 지역이 많아 자연환경이 풍부한 국가입니다.
2. 모잠비크의 기원 및 역사
모잠비크(Mozambique)라는 이름의 기원은 아랍계 상인과 포르투갈 탐험가들의 역사적 교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5세기경, 모잠비크 해안 지역은 아랍 및 스와힐리 무역망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아랍 상인 또는 지배자로 알려진 '무사 빈 비크(Musa bin Biq)' 혹은 '무사 알 비크(Musa Al-Biq)'라는 인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이름에서 "Moçambique"라는 명칭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1498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현재의 모잠비크 섬(Ilha de Moçambique)에 도착했을 때, 현지인들이 이 섬을 '무사 비크의 땅'과 같은 의미로 부른 것을 듣고, 이를 포르투갈어식으로 변형하여 'Moçambique'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며 이 명칭을 확장하여 현재의 국가명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즉, 모잠비크라는 이름은 원래 특정 섬(모잠비크 섬)을 가리키는 지명이었으나, 점차 포르투갈 식민지 행정과 함께 내륙 지역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변하면서 국가명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의 모잠비크는 16세기 초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 이후, 포르투갈의 중요한 해상 교역 거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모잠비크 섬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간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이 지역은 노예무역과 자원 착취가 중심이 되는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의 흑인 노예는 인도, 명나라에도 팔렸는데 임진왜란에도 참전했다고 한다.)
19세기에는 포르투갈이 내륙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며, 현지 원주민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군사적 지배를 강화하고, 농업과 광업을 통해 경제적 착취를 지속했습니다.
19세기 후반, 포르투갈은 베를린 회의(1884 ~ 1885년)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나누는 협정에 따라 모잠비크를 포함한 동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배를 인정받았습니다. 모잠비크는 당시 노예무역이 불법화되고 난 뒤, 농업과 광업 중심의 경제로 전환되었으며, 여전히 극심한 착취와 빈곤 속에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20세기 초,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이 활발해졌고, 1975년 FRELIMO(모잠비크 해방전선, 사회주의적 성향의 민족주의 독립운동 단체)의 승리로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모잠비크는 1975년 독립 이후, 정치적, 사회적 도전과 변화를 겪으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독립 초기, FRELIMO(모잠비크 해방전선)가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으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안정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RENAMO(모잠비크 국가해방전선)와의 내전이 1977년부터 1992년까지 지속되었고, 이는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습니다. 내전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난민을 초래하며, 경제를 심각하게 침체시켰습니다.
1992년 알제 평화협정 체결로 내전이 종식되었고, 모잠비크는 민주적 전환을 시작했습니다.
1994년 첫 다당제 선거에서 FRELIMO가 승리하며 정치적 안정이 도래했습니다. 이후 경제 개혁과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2000년대 들어 모잠비크는 광업과 농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천연가스와 석탄 개발이 주요 산업으로 떠오르며 외국인 투자도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빈곤과 불평등이 큰 문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3. 흑표범, 에우제비우
에우제비우 페레이라는 모잠비크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스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SL 벤피카에서 활약하며 축구 인생의 절정을 맞이했습니다. 벤피카에서의 성공적인 경력 덕분에, 그는 클럽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특히, 그는 유럽 대항전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벤피카의 전설적인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에우제비우는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의 일원으로 뛰며, 득점왕에 오르고 팀을 3위로 이끌었습니다. 이 대회는 그의 축구 경력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포르투갈 축구 역사에서 그의 역할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에우제비우는 월드컵에서 총 9골을 기록하며 뛰어난 공격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큰 영예 중 하나는 1965년 발롱도르 수상입니다. 발롱도르는 세계 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를 위한 상으로, 에우제비우는 이 상을 통해 세계 축구계에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벤피카에서 활동하는 동안, 에우제비우는 2번의 유러피언 컵 우승, 11번의 포르투갈 리그 우승, 그리고 5번의 포르투갈 컵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에서 중요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벤피카에서 10년 이상을 보내며 팀을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공로는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프로 통산 745 경기 733 골).
4. 모잠비크 언어와 종교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며 지방에 따라 북부는 마쿠아어, 중부는 시세나어, 남부는 샹간어 등의 반투어군계 언어를 사용한다. 탄자니아와 접해있어 소수의 스와힐리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스와힐리어도 존재한다.
종교는 기독교가 약 61 %, 이슬람이 약 19 %, 기타 종교가 약 5 %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기독교 내에 가톨릭이 가장 많지만, 남아공 접경지대에는 개신교 신자들도 존재한다.
이슬람교는 모잠비크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이며, 주로 북부와 중부에 밀집해 있습니다.
모잠비크 최북단의 카보델가두 주는 천연가스와 석유 등으로 자원이 풍부하여 모잠비크에서 부유한 지역으로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였고,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습니다.
2017년 안사르 알 순나(IS 반군, 현지에서는 알 샤바브로 알려짐)가 경찰서를 습격하며 분쟁이 시작되었으며, 마을을 습격하고 점령하는 등 심각한 상황으로 번졌다. 주변국 르완다나 남아공 등에서 병력을 지원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싸움을 돕고 있다.